2022. 3. 31. 12:00ㆍ미술관 읽어보기/과천 30주년 특별전
[ MMCA Gwacheon, 30 Years 1986-2016 ]
As the moon waxes and wanes
이번 국립현대 미술관 - 과천 30년 특별전은 전시된 작품 뿐 아니라 학예사가 준비한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기획에 주목했으면 좋겠다. 이번 전시를 위해 기획된 미술관을 조금만 둘러보면, 전시기획자와 디자이너, 그리고 학예사들이 고민 끝에 많은 의미를 담아 마련했다 라는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의미가 담겨 있어서 그 하나하나 모든 의미를 헤아리거나, 다 느껴가지 못하리라- 생각되기도 한다. 하나의 주제 속에 파생된 의미들이 서로 얽히고 섞여 심플하게 한가지만을 생각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데에는 더 보여주고 싶고, 알리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준비된 많은 것들이 그들의 바램과 달리 빛을 보지 못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
어쨋든 !
우리나라에 미술관이라는 건물이 처음 생기고 그 후로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이번 특별전이 얼마나 특별한가를 보여주는거 같아 좋고, 나와 같은 나이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더 애착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건물 속에서 단 4명의 직원으로 시작했던 우리나라 미술관은 덕수궁 석조전을 거쳐 과천에 자리를 잡으면서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술관을 건설하였으며, 몇 년 전에는 서울관까지 개관했다. 그러니까 미술관의 규모나 의미가 달라진 것은 과천관이 생긴 이후이다.
과천관 내부에 도착하면 그 무엇보다 다다익선이 눈에 들어 올 것이다.
다다익선은 과천관의 상징이 되었다. 이번 특별전에 입장하면 그런 다다익선 주변으로 이승택의 떫은 밧줄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이 밧줄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오른쪽 통로의 복숭아빛 색감에 이끌려 도원경 속을 만끽하던 당신은 멀리 보이는 커다란 비행선에 또 한 번 시선을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관람객을 이끄는 이 커다란 동선은 미술관이라는 그야말로 광활한 세계의 경험이다.
관람객들은 분홍빛 통로를 지나면서 서로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영롱한 복숭아빛 공간을 혼자서만 차지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 인생 샷을 찍기도 한다. 뒤쪽에 LED조명이 깔려있어서 오묘하면서도 얼굴을 밝게 비춰주는 박기원 작가의 <도원경>은 작품이기 이전에 관람객들에게 추억을 쌓아주는 미술관 속 무릉도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 분홍빛 통로는 미술관 공간에 대한 재해석이며,
새로운 예술공간으로의 입장을 의미한다.
박기원(1964-) 작가는 작업에 있어서 공간이 주는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공간은 낯설음을 제공하긴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는 체험이며 경험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도원경(桃源境 - 속계를 떠난 별천지)이라는 제목을 지어놨지만, 어느 관람객이 그것을 작품의 이름으로 기억하겠는가.
그 공간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은 복숭아빛 통로로 기억할 것이고,
그저 아름다운 공간. 미술관 속 황홀하면서 나른한 그곳 - 이라고 기억할 것이다.
흩날리는 비닐의 색감은 불빛을 살결에 비춰봤을때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태양빛이 인체 내부로부터 발산하며 피부를 뚫고 넓게 퍼지는 것을 연상시키기 위해 색감과 조명을 배치하였고, 작은 움직임에도 흩날리는 비닐을 통해 공간 자체가 마치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지길 바랬다.
아무도 없을 때, 홀로 작품 한가운데 서 있으면 마치 시간이 멈춘 공간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받는 듯한 묘한 기분까지 느껴진다.
관람객이 붐비지 않는 시간을 이용해 공간 안에 꼭! 혼자 들어가 작품을 맘껏 느껴보길 추천한다.
복숭아 빛 통로는 미술관 중앙의 램프에서 미술관 속으로 사람들을 홀리게 만드는 역할을 하면서 마치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을 꾀하고 있다. 여러 가지 색의 비닐이 흩날리는 통로를 지나 미술관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이륙하게 된 관람객 앞에는 커다란 비행선이 놓여져 있다.
더 확실히 말하자면, 이승택의 신작 떫은 밧줄에 둘러싸인 과천관의 트레이드마크 -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올려다보다 시선을 사로잡은 복숭아빛 통로를 통해 자연스럽게 1,2 전시실을 향해가던 당신은 미술관이라는 다른 세계에서 이불 작가의 <취약할 의향>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비행선을 만든 이불(1964-) 작가는 30대 때부터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만큼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은 작가이다. 이불 작가의 2016 시드니 비엔날레 출품작을 이번 특별전을 위해 미술관 공간에 맞게 재 조정하여 설치한 것으로, 압도적인 크기로 관람객, 특히 어린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뒤쪽의 천막은 산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산이라고 하기엔 거대해 보이지도 않고 사실 조금 더 신경쓰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산과 대지로 대변되는 천위에 검은 자국과 주황색이 난무하는 가운데 대형 비닐과 비행선이 당신의 고개를 젖히게 만든다.
이불 작가가 만든 비행선은 인류 최대 크기의 비행물체 였지만, 1937년 대참사로 폭발했던 힌덴부르크를 모델로 하였다고 한다. 당시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가던 대형 비행물체는 그곳에 탑승한 이들의 저마다의 꿈과 희망을 안고 날아갔으리라 생각된다. 꿈이 간절하지 않아서? 아니, 인류 최대크기의 비행물체는 신의 영역이었던가? 힌덴브르크는 착륙이 아닌 폭발을 맞이 하였다. 대형의 비닐 투명 막 위에 그려진 참수당한 인체 그림과 혈흔은 당시의 참사와 디스토피아의 역사를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작가가 그런 암울한 역사만을 이야기하고자 이 작업을 한 것은 아니다.
인류 최대의 비행기였던 힌데부르크처럼
작가는, 이 비행선을 만들어 예술과 미래에 대한 커다란 상상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불 작가의 작품 <취약할 의향 >은 미술관 모든 층에서 올려다보고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비행선은 2층 회랑에 있는 김구림 작가의 퍼포먼스 <도>라는 작품과 만나게 되어있다. 처음 미술관 전시 기획에 주목해 달라고 언급한 것이 바로 이러한 전시 배치와 미술관의 공간을 사용한 점을 눈여겨봐 달라는 의미이다.
김구림(1936-) 작가는 한국 전위미술의 선두자로서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많이 해왔다. 그의 작품 <도 道>는 우뚝 선 나무 위에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하는 모습으로 도(道)라는 개념을 하나의 행위미술로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행위예술이라는 말이 익숙하지도 않던 1970년, 한국미술협회전에서 진행했던 것을 이번 특별전 오프닝 날 작가가 직접 그때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김구림 작가는 46년 만에 작품을 재현한 것이다. 젊은 시절에 했던 작품을 시간이 흐른 뒤_ 그 시간만큼이나 나이 든 작가가 작품을 재현하는 모습은 작가 자신에게도 관람객에게도 새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번 재현 퍼포먼스 <도>는 시대 맥락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을 확연히 보여준다. 1970년의 <도>는 당시 저항적 시대정신과 함께 도를 닦는 예술인을 표현했던 작품이었다. 2016년의 <도>는 이불 작가의 <취약할 의향>의 거대한 은빛 비행선을 마주하여 새로운 세계로의 지향을 나타낸다. 원래 노자가 말하던 ‘도’ 또한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늘 변화하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말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김구림 작가의 <도> 퍼포먼스가 시대와 상황에 맞게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리 놀라울 것도 아니다.
미술관 2층 회랑에 가면 그날의 기록이 녹화되어 상영 중이다.
2미터 높이의 나무가 놓여져 있고 그 옆의 스크린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비워진 나무는 그 자리를 채워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특별전 전시기간 동안 김구림 작가가 했던 퍼포먼스를 대신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나무 위에 올라가 재현하는 자원봉사자를 만나보진 못했다. 나무통 위에서 참선하는 모습을 재현할 의향이 있으신 분은 미술관 쪽으로 꼭 연락 주면 감사하겠다. 그런데, <도> 퍼포먼스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회적 위선을 벗어던진 채 명상하는 것이 포인트이기 때문에 옷을 벗고 올라가야 하므로 용기 있는 분들의 지원을 기다린다. 아마도 이 점 때문에 내가 자원봉사자 재현 퍼포먼스를 목격하지 못하는 거 같다.
이불 작가의 작품은
이런 김구림 작가의 <도>라는 작품과 만나 앉아서 참선하고 있는 오늘날의 인간과 마주하게 구성되어있다.
이 만남은 시공간의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현실과 역사, 그리고 명상과 상상의 세계가 공존하며 유토피아에 대한 메시지를 발산하는 것은 물론, 커다란 비행선은 우리를 광활한 세계로 인도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미술관이라는 섹션에 마련된 다양한 기획작품들이 이번 특별전을 더 특별하게 만들고 과천관의 공간을 더욱 의미 있고 감동적이게 만들었다. 옥상정원까지 개방이 된 이번 기회에 관람객 모두가 과천의 자연까지 한껏 느껴보길 바란다. 또한 화장실에 들어가 신미경 작가의 <화장실 프로젝트> 비누까지 꼭 사용해 보길 권한다.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라는 순환을 의미하는 전시의 큰 제목처럼 작품은 작가의 작업실에서 미술관의 수장고로, 그리고 다시 전시실이라는 시간적, 물리적 이동을 통해 지금, 이곳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비춰지고 있다. 작품이 작가를 떠나면 그 이후는 작품과 관람객의 몫이다. 좋은 작품도 관람객을 맞이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또한,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일이다. 나는 우리나라 국립미술관이 더 좋은 소장품과 더 다양한 기획으로 모든 이에게 감동의 장소로 자리 잡길 바란다.
※ 설명되는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슨트에게 제공하는 자료에 기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모든 글에 대한 지적재산 및 저작권은 도슨트 하히라 작가 본인에게 있으며 출처 없이 사용하는 것과 복제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