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슨트 양성과정

2022. 3. 17. 10:00사당동 하히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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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슨트 양성과정



대학교 시절 전시장 작품 관리 파트타임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전시 시작 전 후로 관람객이 없는 그 시간에 좋은 작품을 나 혼자 감상할 수 있는 오롯한 공간이 가끔 제공되기도 하고, 입장료 없이 매일 방문할 수 있는 미술관이 좋았다. 일명 전시장 지킴이의 역할은 전시된 작품이 손상이 가지 않도록 관람객의 지나친 접근을 막고 전시장의 쾌적한 관람을 위해 소음의 발생을 최소화시키거나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을 주의시키는 일이었다. 다리가 아프기도 하고 하루에 만나는 사람의 양이 상당하여 별거하는 거 없는 일 같아도 스쳐 지나간 그 관람객의 수만큼이나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사람들만 주시하다 일정 시간이 되면 전시장 안에 전시해설 안내 멘트가 방송되고, 많은 관람객들이 한 곳으로 몰려가 작품해설사의 설명에 따라 이동하는 시간이 있다. 나는 그렇게 작품을 알려주는 그 사람이 그렇게도 멋져 보이더라. 막힘없는 언변과 사람을 압도하는 음성, 그리고 박학하다 못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그 사람. 어릴 적 엄마는 내가 아나운서가 되길 원하셨다. 우리 딸과 멀리 떨어져 살아도 티브이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그런 9시 뉴스 아나운서 말이다. (엄마의 욕심이 좀 과했던 거 같다) 나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아나운서라는 단어를 접했고, 세상에서 뉴스를 가장 재미없어하였지만 그 직업이 말을 잘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그림을 좋아했던 나는 화가의 꿈은 포기하지 못하지만 엄마의 소원이던 아나운서들처럼 말을 차근차근 잘해 내고자 노력하였다. 어릴 때는 발표를 하는 것도 좋아했고 대학교 때부터는 PT 하는 것을 도맡아 하면서 준비과정과 언변을 쏟아내는 그 시간을 설레어하기도 하였다. 나는 그렇게 언제나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다 그때에 나는 그중에서도 미술작품을 막힘없이 설명하는 저기 서있는 저렇게 멋지게 말 잘하는 사람이 그 당시 나의 목표가 되었다. 하지만 계획한다고 모두가 그리되겠는가? 나는 어쩌다 보니 졸업하고 어느새 취직을 한 종로의 한 근로자 일뿐_ 매일 아침 사당동에 위치한 남성역 7호선을 타고 2번의 지하철을 갈아타면서까지 종로에 도착하여 무료하면서도 루틴 한 일상을 지내오고 있었다. 어릴 적 찬란했던 화가의 꿈도_ 잘 나가는 디자이너의 희망도_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말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내 가슴 한구석에 있긴 하였던가 싶을 정도로 말 한마디 없이 사내 메신저로만 채팅을 통해 소통을 하고 있던 나였다.


그러던 도중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청소년 도슨트 프로그램이 있는 줄은 알고 있었다. 방학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미술에 관련된 지식을 공유하고 꿈과 희망을 주는 프로젝트라고 생각되었는데 일반인에게는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직접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을 알고 나는 너무 기뻤다.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만 이수하게 되면 내가 그토록 닮고 싶었던 전시장 안에서 멋들어지게 설명하던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내 심장이 빨리 뛰는 그런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날로부터 나는 미술관에서 공고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2016년

나는 국립현대미술관 14기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을 이수할 수 있게 되었다.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선발된 인원은 총 40명.


면접 때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한 나는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나 생각되었지만, 운이 좋게도 선발인원 명단에 올라가게 되었다. 서류는 간단하게 자신의 이력서 한 장과 자기소개서 한 장을 필요로 했었다. 접수된 서류를 필터링하는 방법은 알 수 없으나 같은 14기 도슨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서류만 2-3번 떨어진 사람도 있었고, 나이가 제일 지극하셨던 할아버님은 5번째 서류 탈락을 맛보고도 포기하지 않고 지원했더니 이번에 미술관에서 끈기를 보고 선발해 준 것 같다고 하신걸 보면 나름 어려운 1차 관문임이 분명해 보였다. 내가 어떻게 서류를 단번에 통과했는지 그 비결을 확실히 공유할 수 없지만 그저 그림에 대한 애정을 들어낸 자기소개서가 한몫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다음 순서로 진행된 면접에서는 면접관 앞에 3명씩 앉아서 함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었다. 취직한 이후로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에 이렇게 면접관 앞에 있는 것이 어색했고, 몇 차례의 관문이 있는 선발 과정이 까다롭게도 여겨지기도 했다. 도슨트는 나름 자원봉사자이기에 돈 받고 일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절차와 과정이 꽤 수고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도슨트를 위한 교육과정을 미술관에서 무료로 헌신해주는 것이고 그러한 전문적인 교육자를 양성하기 위한 선발 과정이었다고 알게 되자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 납득되었다. 번째 질문은 도슨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였는데, 나와 같이 들어갔던 면접자는 도슨트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파생되었으며 가르치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으며~ 로 시작하는 장황하고 멋진 답을 하였다. 사실 나는 도슨트의 뜻이나 어원 따위는 찾아보지도 않고 다른 이들보다는 가볍게 준비하고 면접을 보았기에 그 질문에 관람객과 가장 가까이에서 작품을 바라보고 설명하는 사람이라고_ 내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려 우물쭈물하게 대답한 기억이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최근 1년 동안 인상 깊었던 전시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과천관에서 2015년에 열렸던 최현칠 작가의 동행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뿔싸. 두 번째 면접자가 그 전시를 말해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세 번째 앉아있었고, 머리가 하얗게 된 나는 도저히 다른 전시는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아 결국 같은 전시(최현칠 동행, 함께 날다)를 대답했었다. 그렇게 대답하는 나는 그냥 따라 말하는 모질이가 되어있는 거 같았다.

면접 때 임팩트 있게 대답한 느낌도 없고 기억나는 전시에 대해서는 따라쟁이가 된 나는 합격의 영광을 맛볼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기준은 명확하게 알 수없지만 세 번째 질문인 도슨트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면 활동을 얼마나 할 수 있냐는 물음에 회사를 다녀 평일의 시간을 뺄 순 없지만 주말의 시간을 할애하여 오랜 시간 활동하고 싶다는 나름 의욕적인 대답이 결정 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내 옆에 분이 평일은 절대 할 수 없다고 했던 거에 비해 순화된 답변이 아니었을까_ 상대적인 비교평가로 면접관들에게 나의 대답이 좋게 들려 플러스가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도슨트 - 나와 함께 면접받던 이가 말했듯이 어원은 라틴어 가르치다는 의미의 docere에서 비롯되었다. 어원과 사전적 의미와 같이, 도슨트는 기존의 예술과 문화, 혹은 미술관 소장품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보유하여 관람객에게 설명하는 일을 담당하며 작품에 대해 가르쳐주고 알려주는 일을 한다.

도슨트는 미술전시장의 안내자임과 동시에 해석을 통해 작품과 관람객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도슨트가 예술작품에 대해 단순히 해석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해석에 대한 또 다른 재해석을 해주는 사람이며 미술관에 의해 구성된 의미들과 관람자들에 의해 구성된 의미들을 긴밀하게 교섭해 주는 매개자이면서 동시에 스토리텔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사실 도슨트라는 용어 자체를 미대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잘 알지 못했었고 14기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에 입문하고 나서야 미술관의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그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도슨트 교육과정은 전시기획자와 교육담당자의 진행 아래 전문 자원봉사자 - 도슨트 양성과정이 시작되며 마지막 수업에는 참여자들이 실제 시연을 해봄으로써 수업이 마무리된다. 이 과정까지 미술관과 도슨트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작품을 설명하는 단계와 구성 그리고 관람연령에 따른 방식까지도 배우게 된다. 또한 한국 미술과 전반적인 미술의 장르 또한 익히고 학습하게 된다. 조금 놀라운 점은 중간고사도 있다는 것이었다.

일정의 교육과정을 마쳤다고 할지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전시해설을 바로 진행하는 것은 힘들다. 다양한 관람객들의 상황에 대처해야 하며 즉각적인 순발력도 필요하다. 전시해설을 하는 내가 원하는 관람객만이 설명을 들으러 오지 않는다. 미친 듯이 울어재끼는 아이와 함께 오는 부모도 있고, 인상을 오만가지 쓰고 해설의 잘못된 점을 찾고 있는 듯한 이도 있다. 나보다 박학하고 전공분야를 공부하신 분들이 오거나 가끔 작가나 그 유족들이 찾아와 가슴 떨리게 할 때도 있다. 그야말로 광범위한 관람객과 마주한다는데 있어서 미술관을 찾아오는 많은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또한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오디오 가이드보다는 도슨트가 진행하는 작품 설명을 선호하고 있다. 다른 많은 전시장에서 이미 실행하고 있던 오디오 가이드를 늦게 도입한 쪽도 국립현대미술관이다. 요즈음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람이나 목소리가 좋은 연예인이 전시해설 녹음을 하여 미술작품과 관람자의 거리를 보다 친숙하게 좁혀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과 기계가 하는 일은 다르다. 듣고 있을지 그냥 스킵할지 모르는 설명을 녹음하는 것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눈을 마주하고 상호작용하며 작품을 바라보는 것을 국립현대미술관은 더 지향하고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은 도슨트를 전문자원봉사자라고 명명하고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 다양한 작품 감상을 유도하는 중요한 매개자로 협업하고 있다. 2018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던 첫 외국인 수장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인력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도슨트를 뽑았었다.


도슨트 활동을 위해서는 적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봉사를 수행하여야 하므로 일반적인 자원봉사자보다 높은 교육적, 사회적 능력이 요구된다. 또한 전시를 맡을 때마다 계속되는 학습능력 역시 꾸준히 필요하다. 미술관에서 1년의 전시기획을 알려주고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활동 가능해진 도슨트 중에서 지원자를 받는다. 이러한 지원은 보통 상반기 하반기를 나누어 진행되고 있다. 본인이 자신 있거나 하고 싶은 전시를 지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원하는 전시를 지원하여 발탁된 경우는 오직 한번 뿐이었다. 그 이외에는 4지망이나 5지망으로 적어냈던 전시를 맡아서 진행하였다. 이미 10년, 20년의 이력을 향해가는 만렙의 도슨트 선배들에게 내가 1지망으로 써낸 전시 도슨트로서 나는 밀리는 것 같았다. 그저 내가 지원한 시즌에 도슨트로 활동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언제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고심하여 모든 전시가 기획됨으로 그 가치를 믿고 오직 끊임없는 활동을 위해 지원하는 쪽이다. 기획된 전시 오픈전에는 도슨트 양성과정을 위해 받았던 교육이 아닌, 전시해설을 맡게 된 기획전시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 전문가를 초빙하여 설명을 듣고 학예사와 전시기획자를 통해 전시의 의도와 의미를 전달받고 익히는 시간도 꽤 된다. 전시장 구축이 어느 정도 되면 동선 파악이나 작품의 원본을 보기 위한 시간도 따로 마련된다. 도슨트 활동은 자원봉사라고 하기에는 노력과 수고를 많이 투자해야 하며 나의 개인적인 시간에 대한 보상 없이 부담하고 할애해야 하는 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비용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많은 도슨트들이 활동하는 이유는 아마 그 성취감과 만족감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자원봉사자라는 타이틀 안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좋고 작품의 가치를 한층 더 깊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다.

미술관에서는 이러한 도슨트들의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작가와의 시간이나 심화교육 등 질적으로도 품격 높은 시간을 따로 제공해 주기도 한다. 또한 연말에는 일년동안 고생한 도슨트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도슨트의 밤'을 마련해주고 있다. 나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통해 나이가 들어도 교육에 대한 열망과 그림의 가치에 대한 존중을 아끼지 않으시는 분들은 많이 만나고 있다. 사실 나는 실질적인 도슨트 활동 인원 중에서 젊고 어린 쪽에 속한다. 매번 이렇게 어린데 회사 다니면서 주말에 활동하냐고 대견하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랄까_ 그런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늙어 갈 때까지 많은 전시를 다루길 바란다는 점과_ 좀 더 어린 친구들이 자원봉사에 대한 열망이 많아져 우리나라도 미국만큼이나 다양하고 많은 도슨트가 앞으로도 계속 끊임없이 양성되길 원한다는 점이다.









 

※ 도슨트 하히라는 국립현대미술관 도슨트 양성과정의 교육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공됩니다.
※ 설명되는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슨트에게 제공하는 자료에 기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모든 글에 대한 지적재산 및 저작권은 도슨트 하히라 작가 본인에게 있으며 출처 없이 사용하는 것과 복제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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