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으로

2022. 3. 15. 22:24사당동 하히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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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미술관으로 가기까지_



미술전공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그것도 입학한 지 3년이 지나서_
나는 내가 그림을 잘 그리니 대학에 가서 까지 그림을 배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시간 내어 그리면 될 뿐 '그리는 것'을 배우기 위해 비싸기로 유명한 대학의 학비를 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엄빠가 내주셨지만,. ) 어릴 때는 당연 그림 잘 그리기로 유명했고, 교내의 미술대회와 각종 신문사 그림 그리기에 참여하여 받아온 상장만 수두룩 했었다. 그리하여 어릴 적 나의 장래희망은 늘 화가였었다. 그러다 어느 날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어린 생각에 화가라는 단어보다 좀 더 멋져 보였달까 -

그렇게 내 꿈은 그림 그리는 직업이 아닌 디자인을 하는 쪽으로 변경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입시생 시절 회화과나 조소과와 같은 순수예술전공보다는 산업디자인. 제품 디자인. 금속공예디자인. 목조형 가구 디자인 그리고 시각디자인과 같은 이름마저 멋들어지게 길어 보이는 디자인과를 눈여겨보게 된 것이다.

 


중학교 시절 입시반 언니 오빠들보다 더 잘 그린다 하여 천재란 소리도 나름 들으면 그렇게 나의 유년시절을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었다. 이런 나는 당연히 미대를 들어갔고, 내 나름의 생각에 그림은 배우는 것보다 내가 그려서 연습하고 노력하여 발전하는 것이라 느꼈다. 그러니 대학에서는 그림보다는 디자인을 배우려 하였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실수였다. 나는 디자인의 재미는 느꼈지만 그림이 그리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저 엉덩이 붙이고 앉아 묵묵히 그리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되었어야 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 걸맞게 화가는 배가 고프다는 말 때문에 디자인과를 선택했던 것도 있었다. 나는 내가 소위 말하는 그 유명한 대학을 나오면 진실되게 멋지게 성공해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시각디자인과를 나온 선배들은 나름의 디지털 블루오션 시대에 맞춰 졸업과 동시에 과장을 달고 1년 만에 팀장이 되기도 하면서 누구나 알법한 대기업에서 여기저기 러브콜을 받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 선배들을 보면서 나 또한 서른이 되면 당연히 돈도 많고 이룬 것이 수두룩한_ 멋진 그런 커리어 우먼 말이다. 현실은 그저 한 달 한 달 생활하기 벅차고 일에 치여 살며 회사의 출근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조마조마 빠른 발걸음을 향하는 종로의 한 녀성일 뿐이었다. 나름의 디자인직을 사당동에서 종로까지 다니며 반복되는 일상과 변화 없는 내 인생에 발전은 더 이상 없어 보여 취미생활을 가져도 보고, 알코올과 친구들로 저녁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며_ 한때는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거나 클럽에 가서 신나게 놀았던 시간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가져오던 나의 꿈이 이제는 하루, 일주일, 한 달을 버티는 명목으로 자리 잡았으며 나는 더 이상 꿈이 있는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미술관을 찾았다.


작품을 보고 작가의 생각을 읽어보며 좋은 작품을 만날 때마다 벅차던 그 느낌을 계속 간직하고 싶어 또다시 미술관을 찾았다. 미대를 나오면 다들 그림에는 조예가 굉장히 깊은 줄 알지만 실상 전공자들도 작가 이름을 까먹기도 하고 아예 모르기도 한 작품들은 천지 삐까리다. 모르는 작품도_ 처음 알게 된 작가도_ 그저 만나고 보면서 미술관 안 전시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무게 있는 침묵의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미술관과 친해졌다.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_ '그림 그릴 시간이 부족해' 라며 핑계만 늘어놓던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바라보기에 시간을 더 투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미술관에 가면 만나볼 수 있는 도슨트라는 존재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미술 전공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어에 생소해하고 있었다. 미술관에 가면 언제나 시간에 맞춰 설명해 주시던 그 마이크를 찬 분이 도슨트였구나_

전시해설사, 작품 설명원으로 불리는 사람과 도슨트는 사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차이라고 한다면 전공 공부를 했고 그렇지 않고를 기본으로 나눌 수 도 있겠고 자원봉사자이다, 아니다 를 둘 수도 있다.

나는 나름의 미술 전공자로서 도슨트 활동을 하는 하나의 개인이다. 그 기반은 국립현대미술관에 두고 있으며 앞으로 내가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자료와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을 수료하게 되면서 얻게 된 지식들 일 것이다.


도슨트 활동을 하면서 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시해설사보다 더 많은 공부와 노력을 하는 도슨트들을 만나게 된다. 나이도 지극히 있으신 분도 있고, 이것이 전업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미술관을 뛰어다니시는 분들도 있다. 그중에 나는 일 년에 한 두 개의 전시를 컨트롤하는 샛 병아리이지만, 나의 선배 도슨트들이 그랬듯 내 나이가 지긋해질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이 글을 썼으면 좋겠다.









 

※ 도슨트 하히라는 국립현대미술관 도슨트 양성과정의 교육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공됩니다.
※ 설명되는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슨트에게 제공하는 자료에 기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모든 글에 대한 지적재산 및 저작권은 도슨트 하히라 작가 본인에게 있으며 출처 없이 사용하는 것과 복제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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