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8. 10:00ㆍ작품 읽어보기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올해의 작가상 2017]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상제도입니다. 한국현대미술의 가능성과 비전,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작가들을 지원하고 육성하기 위한 수상제도로 추천과 심사를 통해 4명의 작가를 선정합니다. 그렇게 선정된 작가는 제작비(4천만원)를 지원받고 신작만을 전시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백현진 작가의 작품을 감상해 보겠습니다.
아마도 올해 선정된 4명의 참여작가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작가일 것 같습니다.
음악을 좋아하시는분들에게는 90년대 1세대 인디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로 친숙하실 것 같고,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을 비롯해서 다양한 작품에 모습을 비췄던 배우-백현진을 기억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백현진작가는 본인이 영화를 연출하기도 하고 영화음악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뿐아니라 시를 쓰는 시인이면서 그림도 그리고_ 퍼포먼스를 하는 행위예술가이기도 합니다.
백현진 작가는 자신을 “소리 다루는 일과 붓질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백현진 작가는 1972년생으로, 음악가, 영화감독, 미술가로서 전방위적으로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2000년 초반에 여러 편의 독립영화에 출연하다가 ‘경주(2014)’ ‘특종:량첸 살인기(2015), ’해어화(2015)‘,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 같은 영화에도 출연했고, ’복수는 나의 것(2002)‘, ’미쓰 홍당무(2008)’의 영화음악을 담당한 적도 있습니다. 2016에는 tvn드라마 ‘매일 그대와’에서 야망이 큰 부동산 전문가로 나왔는데, 연기도 곧잘해서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드라마에도 출연했던 그가, 정신 사나워서 TV도 안 보는데다가 TV없이 산지가 25년이 넘었고,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도 YouTube를 통해서 봤다고 하니 아이러니 하죠?
이런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가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도 인정 받게 됩니다. 추상회화를 꾸준히 작업해서 2005년 아라리오갤러리 전속 작가가 되었고, 서울,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열린 개인전이나 단체전을 통해 독특한 작품을 발표했고, 2017년에는 올해의 작가 중에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백현진 작가는 1990년대 중반부터 단체전등을 통해 화가로서의 작품들을 발표해 오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굳이 나누자면 추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한동안은 초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얼굴들을 모티브로 한 작품 들이 많았고, 2010년 이 후부터는 그러한 모티브도 보이지 않는 순수추상적 작품들을 많이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서울식 휴게실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계신 이 공간의 이름은 분홍색 네온사인에 보이는 것처럼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입니다.
제목을 보고 좀 끔찍한 것 아니냐라는 말도 있었지만,
이것이 바로 현재의 우리나라 자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단순히 끔찍하다고 치부해 버리기엔 대한민국 사회에서 너무나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이며,
어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기본조건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다고 작가는 생각했습니다.
제목을 이루고 있는 단어들, 실직이나 폐업, 이혼 같은 것들이 잘못이라거나 나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그저 그냥 부정할 수 없는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란 이야기 입니다.
이제 40대 중반을 넘긴 작가는 같이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과 주변의 처지를 바라보며
어떤 휴게실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럼 이 휴게실이라고 불리우는 공간을 한번 둘러 보실까요?
책상위에는 작가가 쓴 시가 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벽을 한 번 만져보시면 울림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진동처럼 들리는 작가가 만든 이 음악은 휴게실의 공기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눈높이도 아닌 벽 위쪽으로 걸려진 백현진 작가의 그림들은 전통적 매체인 회화가 무심하게 설치되어 그저 휴게실 건축 중 하나의 장식으로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
오른쪽 천장에는 몇 개의 빛이 보이는데, 마치 나무 판자 지붕의 부서진 구멍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밖에도 휴게실 이곳저곳에는 알 듯 모를 듯한 장식들이 꾸며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지은 가상의 시나리오, ‘시’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각 테이블 위에 시가 놓여 있습니다. 가정이 있는 한 남자는 실직 후 치킨 집을 개업하지만 곧 폐업을 하고 부채를 지게 됩니다. 경제적 능력을 잃고 무능력한 가장이 된 남자는 아내와 갈등 끝에 이혼하고, 빚에 시달리다 자살을 선택합니다. 남자의 장례식에 다녀온 친구가 우연히 들어가게 되는 장소가 바로 지금 여러분이 계시는 ‘서울식 휴게실’입니다. 이 모든 상황과 조건은 작가의 주변 이야기에서 시작됐지만, 나의 이야기이자 현재 우리 주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백현진 작가는 설계도를 보며 휴게실을 만든 것이 아니라, 혼자서 역할극(role-play)을 하며 이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순간 인테리어하는 사람에게 오더를 내리는 클라이언트가 되었고, 조명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이번 작품은 ‘전방위 예술가’인 백현진 작가 스스로가
하나의 매체가 되어 여러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현진 작가가 늘 부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작품을 감상할 때 이것은 어떤 의미이고,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 것이다 하는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예술은 정답이 있는 퀴즈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고정된 의미로 받아들여지거나, 해석에 묶이지 않기 바랍니다.
천 명의 관람객이 그의 작품을 보았다면 천 명 각자의 경험과 기분을 바탕으로 천 가지의 서로 다른 자신만의 감상과 이해를 - 백현진 작가는 가장 바라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작품감상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 많은 체력소모를 요합니다.
미술관에 와서_ 계속 걸으며 힘들게 전시를 보다가 모처럼 앉아서 함께 오신분과 이야기할 수 있는_ 정말 휴식의 공간이자 작품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에게는, 그러기엔 좀 무겁고 편치 않은 제목이 불편한 인상을 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람들 중에 이 휴게실에 오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냉소적으로 사회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러한 이때에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여러분에게 백현진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 비하면
조금은 덜 삭막한 휴게실이자 작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 설명되는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슨트에게 제공하는 자료에 기본 근거를 두고있습니다.
※ 모든 글에 대한 지적재산 및 저작권은 도슨트 하히라 작가 본인에게 있으며 출처없이 사용하는 것과 복제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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