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담아낸 시공간 - 정연두

2022. 8. 10. 10:00작품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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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효과

 

 

정연두 - 프리즘 효과
정연두 - 프리즘 효과 ㅣ 2017 ㅣ C - 프린트 4점

 

 

[덕수궁 야외 프로젝트: 빛·소리·풍경]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문화재청 덕수궁 관리소와 함께 진행하는 전시로, 2017년 으로 120주년이 되는 대한제국 선포(1897)를 기념하며 그동안 익숙하던 화이트큐브 형식의 미술관 내부에서 벗어나 이색 공간인 덕수궁에서 펼쳐지는 전시입니다.

 

덕수궁은 임진왜란 직후 선조가 머물면서 왕궁으로서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며,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조선이 자주 독립군임을 대외에 밝힌 의지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역사적 공간을 참여 작가(9)들이 수개월간 출입하면서, 대한제국시기를 모티브로 덕수궁에 내재된 역사적 배경과 독특한 공간적 특성을 작가 본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조형적인 접근을 시도한 작품들로 덕수궁 내 7개의 공간에 마련되었습니다.  


덕수궁 석조전 [德壽宮石造殿]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 제공

 

덕수궁 석조전 [德壽宮石造殿]

 

덕수궁 안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석조 건물. 1900년(광무 4)에 착공하여 10년 만인 1910년(융희 4)에 완공한 열주식(列柱式) 르네상스식 건물로서, 공사비 130만원(元)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준공 당시는 이미 대한제국의 말기로서 황제국의 궁궐로서 사용되지는 못하고, 고종이 살아 있을 때 잠시동안 사용했을 뿐이다. 해방 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의 회담장소로 사용되었으며, 53년부터 국립박물관, 73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쓰다가 지금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한제국 광무황제(고종, 1852~1919)의 숙소와 사무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1898년 영국인 건축가 하딩(J. R. Harding)에 의해 설계된 3층 구조의 석조건물이다. 1900년(광무4년) 착공돼 1910년(융희3년)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대한 제국의 주도로 지어진 건물이다. 석조전은 조선의 궁궐이 침전(왕의 침소)과 정전(업무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던 것과 달리 두 가지 기능이 모두 통합된 건물이었다. 지층은 상궁처소·주방과 같은 시종들의 준비공간이었으며, 1층은 접견실·귀빈실·홀 등 업무용 공간, 2층은 침실·욕실 등 황제의 사적 공간이었다. 

 

본래 고종의 처소와 사무공간으로 건립했지만 주로 고종의 일곱째 아들 영친왕이 기거했으며 고종은 1919년 1월 승하할 때까지 집무실과 알현실로만 사용했다. 석조전 완공 이후인 1911~22년까지 영친왕(고종의 일곱째 아들) 방문 시 임시숙소로 사용됐으며, 1933~45년까지는 덕수궁 미술관과 이왕가미술관으로 사용됐다. 해방 직후인 1946~47년에는 미ㆍ소공동위원회 회의장이 설치됐다.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1973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1987년∼2005년까지는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됐다. 이처럼 덕수궁 석조전은 일제강점기 미술관으로 전용되면서 주요 내부 장식이 훼손됐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구조체가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이에 문화재청은 1930년대 이후에 여러 용도의 건물로 사용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된 석조전의 원형 복원 공사를 2009년 10월부터 시작했으며, 2014년 10월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했다.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은 ‘지층-1층-2층’의 총 3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층은 대한 제국의 근대 개혁과 신물문의 도입, 석조전 복원 기록을 담은 전시실이 위치하고 있다. 1층은 대한 제국의 정치·외교 의례 등에 관한 전시실, 2층은 황실 소개와 함께 대한 제국 황실의 사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한국근현대사사전


 

석조전은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축으로 1910년 완공되었습니다. 1층은 접견실과 식당이 있는 황제의 공적 공간이었고, 2층은 침실과 서재 등이 있는 황실 가족의 생활공간이었습니다. 1919년 고종 승하 후 일본의 미술관 등으로 사용된 적 있습니다.

 

 

이곳에 작품을 설치한 정연두 작가는 1969년 생으로 퍼포먼스나 사진, 영상 작업에 주력하는 작가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정연두 작가는 우리 역사에서 가려진 대한제국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작품을 기획했습니다. 작품 제목은 <프리즘 효과> 입니다. 프리즘을 통해 한 줄기 빛이 들어오면 여러 색의 스펙트럼의 빛을 발하듯, 역사적 순간도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관점을 보여주는 제목입니다.

 

 

 

작품은 고종황제와 딸인 덕혜옹주의 모습을 석조전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에 따라 보여줍니다.

 

석조전의 동쪽으로는 고종이 덕혜옹주를 위해 세웠던 유치원인 준명당이 있으며 이 사진은 아버지로서 딸을 지키려던 고종을 바라보는 사적인 시선을 보여줍니다석조전의 남쪽으로는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이용되는 최초의 재판소인 평리원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고종과 그의 딸을 바라보는 공적인 시선에 해당됩니다

 

서쪽에는 을사늑약이 맺어진 중명전이 있으며 이쪽 방향의 사진은 국권을 수호하려고 했던 고종과 강제로 늑약을 체결하려 했던 갈등을 보여주는 침략자의 시선입니다. 마지막으로 북쪽에는 영국, 러시아, 미국 등의 강대국들의 공관들이 있으며, 이 방향의 사진은 열강의 입장에서 고종과 대한제국을 보는 타인의 시선입니다. 

 


이렇게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 차이로 바라보는 것에 착안해 고종과 덕혜옹주를, 더 나아가 대한제국을 동서남북 4개의 방향에서, -, 줌-아웃 방식으로 촬영하고 사각 벽에 공간의 물리적 위치와 일치하도록 작품을 배치하였습니다.

 

정연두 작가는 열강의 침략 앞에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를 바로 세우려던 고종황제의 모습 뒤에 감춰진 인간적 고뇌와 한 아버지로서의 애정 등 한 인간이 갖는 다양한 모습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드러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을 위해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황실 평상복을 제작하였고, 모델에게 기록으로 남아있는 두 인물 사진을 참고로 분장하여 촬영하였습니다.

 

  

사진 연출 혹은 영화적 형태로도 보여지는 정연두 작가의 작업은 현재의 시공간 속에 과거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실제로는 가상이나 현실적으로 있을 법 하다고 여길 수 있는 착각을 유발시키고 있습니다.

 

 

완성된 정연두 작가의 작업은 사진은 한 단면을 보여주는 매체이기에 감상을 하는 관람객 여러분이 어떤 입장 차이를 가지고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두 인물에 대한 다른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 설명되는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슨트에게 제공하는 자료에 기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모든 글에 대한 지적재산 및 저작권은 도슨트 하히라 작가 본인에게 있으며 출처 없이 사용하는 것과 복제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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