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2. 10:00ㆍ작품 읽어보기
시작점의 풍경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빛·소리·풍경]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문화재청 덕수궁 관리소와 함께 진행하는 전시로, 올해로 120주년이 되는 대한제국 선포(1897년)를 기념하며 그동안 익숙하던 화이트큐브 형식의 미술관 내부에서 벗어나 이색 공간인 덕수궁에서 펼쳐지는 전시입니다.
덕수궁은 임진왜란 직후 선조가 머물면서 왕궁으로서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고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조선이 자주 독립군임을 대외에 밝힌 의지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번전시는 이러한 역사적 공간을 참여 작가(9명)들이 수 개월간 출입하면서, 대한제국시기를 모티브로 덕수궁에 내재된 역사적 배경과 독특한 공간적 특성을 작가 본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조형적인 접근을 시도한 작품들로 덕수궁 내 7개의 공간에 마련되었습니다.
덕수궁 석어당 [德壽宮昔御堂]
석어당은 궁궐 안에서 정전을 제외한 유일한 2층 건물로 외래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재래식 민가 건물로서 덕홍전(德弘殿)과 함녕전(咸寧殿)이 자리한 지역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 현재 중화전의 동쪽 뒤편에 있고 즉조당과는 축(軸)이 맞지 않은데 이것은 선조가 처음 파천(播遷)에서 환도(還都)하여 시어소(時御所)로 삼았을 때는 이 건물밖에 없었기 때문에 배치에 구애받지 않아서인 듯하다.
이곳은 임진왜란 후 선조가 환도하여 승하할 때까지 16년 간 어소(御所)로 사용했던 곳이며 인목대비(仁穆大妃)가 광해군을 이 건물 앞뜰에 꿇어 앉혀 죄를 책한 곳이라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04년 불에 탄 것을 같은 해에 다시 중건한 건물로서 가칠(假漆)을 하지 않은 백골집으로 이름 나있다.
석어당은 덕수궁내 유일한 2층 건물이기도 하지만 단청을 칠하지 않은 점도 특이하다. 이층은 석어당 안 서쪽에 설치된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누마루로 되어 있는 이층은 사방의 창문을 모두 열면 맞바람이 치도록 되어 있고 특히 종도리에 먹으로 용(龍)을 그려 넣은 점도 특이하다.
* 참고자료
석어당에 전시된 권민호 작가의 작품 <시작점의 풍경> 입니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권민호 작가는 디자인 특유의 모던하고 세련된 특성을 바탕으로 도면 형식을 차용한 건축적 드로잉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채색 전에 진행하는 '밑그림' 작업에 큰 관심을 가졌던 작가는 한국의 미대입시 교육에서 자를 절대 사용하지 말고 손으로만 그리라는 교육 방식에 의문을 갖게 되었고, 자를 사용하며 느낄 수 있는 날카로움, 세련됨, 엄격함 등이 기름 종이 위에 연필, 목탄과 함께 어우러지며 수많은 선들이 중첩되어 나오는 드로잉의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보시는 작품은 여러 장에 종이가 모여 하나의 대형 드로잉 작품으로 완성된 모습입니다.
드로잉 선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작업 방식을 바탕으로 권민호 작가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덕수궁을 바라보며 덕수궁 안 석어당에 둘러싼 역사와 정치적 맥락을 연구하고, 작가 개인의 시점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곳 석어당은 덕수궁에서 가장 유서 깊은 곳으로덕수궁 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층 전각으로 궁내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단청을 하지 않아 소박하고 단아함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전시된 작품 역시 색을 입히지 않은 드로잉 작품이 전시되어 묵직한듯 석어당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어 기품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권민호 작가는 연필과 목탄을 사용해 도면형식을 차용한 석어당의 흑백 드로잉을 하고 애니메이션 기법의 부분적인 콜라주와 프로젝터 맵핑 작업을 덧입혀 한국 근대의 산업화를 담은 새로운 풍경화 <시작점의 풍경>을 완성하였습니다.
작품명 <시작점의 풍경>처럼 덕수궁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빠르고 거대하게 유입되는 새로운 세상의 개념인 근대에 맞서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지를 풍경처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드로잉의 중앙에는 석어당의 건물이 있고, 대한제국 시기의 가옥부터 주상복합 건물등의 주거 형태와 서울역, 가로등, 네온 사인도 보입니다. 그리고 작가가 직접 녹음한 시끄러운 기차소리와 함께 식민지 경성을 누볐던 증기기관차 모갈 1호와 KTX가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
권민호 작가는 프로젝터로 빛을 투사하여 드로잉 내부의 대상들에 색채와 움직임을 부여 하였고, 또한 천장에서 부터 매달린 전구는 바람에 따라 움직이며 작품의 모습을 계속해서 변화 시키고 있습니다.
근대기에 들어 온 전구는 근대문물의 상징임과 동시에 근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상징성있는 물건입니다.
오래된 백열등에 켜질 때 찌지직 거리는 필라멘트 잡음과 전구의 깜박임을 통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도 한국의 것을 지켜야 한다는 고종의 혼란스런 마음까지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설명되는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슨트에게 제공하는 자료에 기본 근거를 두고있습니다.
※ 모든 글에 대한 지적재산 및 저작권은 도슨트 하히라 작가 본인에게 있으며 출처없이 사용하는 것과 복제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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