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직면한 문제 -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2022. 8. 3. 10:00작품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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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수레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 노숙자 수레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 노숙자 수레 ㅣ 1993 ㅣ 재제작 복합매체

 

국립현대 미술관 서울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

 

 

이번 전시는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지난 40여 년간의 작품 세계를 망라하는 회고전입니다.

 

부제목인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은 작가의 주요 활동을 묶어주면서 시기별 변화 과정으로 마련되었습니다여기서 기념비는 공공장소의 상징적인 건축물과 인물의 동상인데, 예를 들어 전쟁기념관이나 유명한 미술관 또는 미국 링컨 대통령 동상 등입니다. 프로젝션은 기념비를 스크린 삼아 그 위에 영상을 투사하는 작업입니다. 

 


2차 세계 대전 [第二次世界大戰]

1939 9,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어 1941 12, 태평양 전쟁 개시와 함께 세계 전쟁으로 발전한 추축국과 연합국 사이의 대전쟁을 말한다. 1945 5월에 독일이, 같은 해 8월에 일본이 무조건 항복으로써 이 대전쟁은 종결되었다. 1차 세계 대전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전쟁으로 시작되었으나, 한편으로는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전쟁, 식민지 · 종속국의 민족 독립 투쟁이기도 하였다. 1차 세계 대전보다 훨씬 더한 총력전으로서, 항공 전력 · 기갑사단 · 레이더 등 기술적인 진보가 현저하였으며, 생산력과 기술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한층 높아졌다.

 

 

홀로코스트 [Holocaust]

요약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하는 행위를 총칭하지만, 고유명사로 쓸 때는 제2차세계대전 중 나치스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뜻한다. 특히 1945 1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나치에 의해 학살되었는데, 인간의 폭력성, 잔인성, 배타성, 광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20세기 인류 최대의 치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아방가르드전위예술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적 위기상황에서 비롯된 20세기 초의 혁신적인 예술경향을 일컫는 용어. 기존의 예술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예술의 개념을 추구하였다.

 

바르샤바: 폴란드의 수도이자 마조비에츠키에(Mazowieckie) ()의 주도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1943년 폴란드-바르샤바 지역에서 태어난 유대계 폴란드인입니다2차 세계 대전  전쟁의 막바지와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 속에서 작가의 외가는 어머니를 제외하고  모두 학살당했으며 보디츠코는 지휘자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포스터에서만 봤을 정도로 거의 보지 못하고 성장하였다고 합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졸업후엔 낮엔 디자이너로 밤엔 예술창작활동을 하였습니다. 폴란드는 공산주의 국가였지만 낮에 열심히 일을 하면 저녁엔 무엇을 하든 자유로웠다고 하네요.

 

 작가는 1977년 캐나다로 망명하고 1983년엔 미국으로 거주를 옮깁니다. 망명 후에는 창작활동을 하면서, MIT대학을 거쳐 지금 현재는 하버드대학교 공공미술, 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작가는 지난 40여년간 아방가르드예술의 최전방에 있었고 항상 예술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작가입니다. 그런 고민을 전시장에서 고스란히 보실 수 있습니다.

 

폴란드를 떠나 캐나다로, 또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는 자신을 난민이라고 표현합니다. 폴란드에서는 나름대로 자리도 잡혀 있었는데,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교수였지만 결국 이방인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이민자, 난민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와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주고 그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작업을 합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살아 온 작가는 캐나다를 거쳐 1983년 미국에 정착하면서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80년대는 기록적 한파가 덮쳤던 때 입니다. 작가는 부동산 개발로 지어진 빌딩들은 비어 있는데 길거리에서 노숙자들이 모여 불을 쬐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폴란드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재건해야했기에_ 국민모두가 다 같이 힘들기는 했지만, 그런 공산주의 나라에서도 적어도 굶어죽는 사람이나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노숙자가 존재하는 뉴욕이 이상하게 다가왔다고 합니다. 


뉴욕이라는 - 자본주의 심장부에는 화려하고 번영한 건물들이 많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들어갈 공간은 없고, 오히려 그곳으로부터 쫓겨나 노숙자가되어 거리에서 방랑하는 모습이 보디츠코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되어 지금 여러분이 감상하시는 작품 - <노숙자 수레>가 탄생하게 됩니다.

 

 

당시 뉴욕에서는 약 7만 명이상의 홈리스가 존재했습니다재개발 광풍으로 홈리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정부에서는 그들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임시 거처를 마련했지만, 수용소같은 열악한 환경밖에 제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_숙소 대신 길거리를 선택하는 노숙자들이 많았습니다. 주민들은 일터에 갈 때 마지못해 노숙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불편을 느꼈고,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위해서라도 노숙자들의 존재는 골칫거리였습니다.

 

뉴욕시는 임시 숙소를 거부하고 노숙을 선택하는 사람을 정신질환자로 간주해 수용하려고까지 하였습니다. 보디츠코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숙자의 이동수단이자 집인 <노숙자 수레>를 만들었습니다노숙자들이 마트의 쇼핑카트를 끌고 다니며 캔이나 병을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걸 보고, 아래에는 재활용품들을 모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수레를 끌고 계단을 통과하기도 용이하게 만들었습니다또한 트럭이나 차들에 치이지 않도록 눈에 띄는 색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앞쪽을 열면 세수할 수 있고, 바비큐판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수집한 헌 책과 헌 옷 등을 판매할 수 있도록 매대로까지 변형이 가능합니다.

 


지금 보시는 이 사진은 한 노숙인이 길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부동산 재벌 트럼프의 트럼프타워 앞입니다.

 

사진 속 수레는 1993년 다시 제작한 것이고,

1988년 처음 만든 작품은 전시장 밖에 전시되어 있으니 전시해설이 끝나고 나면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수레는 정말로 만들어서 노숙자들에게 하나씩 제공하여 살게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길거리에서 먹고 자는_ 이러한 상황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작가는 이런 생각을 담아서 의문을 제기하는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노숙자 문제는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뉴욕 뿐만의 아닌 우리나라와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입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해져가는 사회해서 심각한 생존환경에 내몰리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작품이었습니다.





 

 

 

 

 

 

※ 설명되는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슨트에게 제공하는 자료에 기본 근거를 두고있습니다.
※  모든 글에 대한 지적재산 및 저작권은 도슨트 하히라 작가 본인에게 있으며 출처없이 사용하는 것과 복제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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